상춘곡(賞春曲)- 정극인

2007. 12. 26. 12:53[한자자료]/古典的 意味

상춘곡(賞春曲)-  정극인

홍진에 묻힌 분네 이 내 생애 어떠한고 옛 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 한 이 하건마는 산림에 묻혀 있어 지락을 모를 것가
수간 모옥을 벽계수 앞에 두고 송죽 울울 리에 풍월 주인 되었세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도리 행화는 석양 리에 피어 있고
녹양 방초는 세우중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어니 흥인들 다를소냐


시비에 걸어보고 정자에 앉아보니 소요음영하여 산일이 적적한데
한중 진정을 알 이 없이 혼자로다 이바 이웃들아 산천 구경 가자스라
답청일랑 오늘 하고 욕기는 내일 하세 아침에 채산하고 나조에 조수하세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으로 바퉈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 놓고 먹으리라


화풍이 건듯 불어 녹수를 건너오니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에 진다
준 중이 비었거든 날더러 아뢰어라 소동 아해더러 주가에 술을 물어
어른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미음 완보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 좋은 물에 잔 씻어 부어들고 청류를 굽어보니 떠오난 이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뫼이 그것인가 송간 세로에 두견화를 부치들고
봉두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천촌만락이 곳곳에 벌려 있네
연하 일휘는 금수를 재폈는 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사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아올꼬
단표누항에 흩은 혜옴 아니하네 아모타 백년 행락이 이만한들 어떠리

 

현대어풀이

속세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옛 사람의 운치 있는 생활을 따를까 못 따를까?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산림에 묻혀

자연과 벗하여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르는 것일까?

 

두어 간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송죽(松竹)이

우거진 숲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도다.

엊그제 겨울이 가고, 이제 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저녁 놀 속에 피어 있고,

버드나무와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마름질해 냈는가,

붓으로 그려냈는가? 조물주의 신비로운 창조의 솜씨가 사물마다에 야단스레 나타나 있구나.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의 흥겨움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아양부리는 모습이로구나.

자연과 내가 하나이니 흥(興)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을 나와 걸어도 보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고, 또 천천히 거닐며 시를 읊기도 하며

산 속에서 지내는 나날이 고요하고 적적(寂寂)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맛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나 혼자 뿐이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을 가자꾸나.

푸른 풀을 밟으며 들을 산책하는 일은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 아침에는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는 낚시질을 하세.

이제 막 익어서 발효한 술을 갈건(葛巾)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를 꺾어 그것으로 잔 수를 세어 가며 먹으리라.

부드러운 봄바람이 잠깐 불어 푸른 물이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잔에 스며들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가를 물어 받아다,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나직이 시를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 시냇가에 혼자 앉아,

깨끗한 모래사장 맑은 물에 술잔을 씻어 술을 가득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다. 무릉도원이 가깝도다. 저 들이 바로 그 선경인가?

 

소나무 숲 사이 좁은 길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내려다보니,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에 벌여 있네.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로 채색된

자연의 아름다움은 마치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엊그제까지 검던 들이 봄빛으로 넘치는구나.

 

공명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아름다운 자연 외에 어떤 벗이 있겠는가?

소박하고 청진한 시골 생활에 부귀와 공명 같은 번거로운 생각을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자연을 벗하여 욕심 내지 않고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