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학이편1~4까지

2008. 8. 16. 11:21[한자자료]/古典的 意味

學而第一(학이제일) -1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배워 때에 맞추어(timely)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뜻을 같이 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

<해설> - 도올

공자에게 있어서의 학(學)이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며 "미지의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공자의 일생을 통해 추구된 학(學)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이 아닌, "禮(예)·樂(악)·射(사)·御(어)·書(서)·數(수)"로 통칭되는 육예(六藝)를 말한다. 그것은 문무의 구분이 전혀 없는 매우 실용적인 개념이다. "習(습)"은 學과 병치되는 독립된 개념이다. "習"(익힌다)이라는 것은, 學이 미지의 세계로의 던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천은 반드시 "때"(時)를 갖는다는 것이다. 문무가 통합된 六藝(육예)를 익히는 과정이란 반드시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書(서)·數(수)를 할 수는 있으나 射(사)·御(어)를 할 수는 없다. 장년이 되어도 여름의 맑은 날씨에 말달리고 활을 쏠 수는 있으나 추운 겨울날씨에 빙판에서 말달리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배움의 익힘이란 내 몸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익힘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요(身中時), 또 계절의 형태에 따라(年中時), 또 하루 중에서 아침,점심,저녁에 따라(日中時) 익힘이 달라질 것이다. 때를 잘못 타서 배우고 익히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평생을 통해 때를 맞추어 끊임없이 정진하여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뜻이다. "不亦說乎(불역열호)"라 한 구문에서 "亦"의 뜻도, 딴 즐거움도 있는데 이것 "또한" 즐겁다는 식으로 새기면 안된다. 여기서 "亦"이란 자기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고 남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강조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亦"이 아니라 기쁨의 절대적 경지를 구가하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구문의 "不亦樂乎"의 "樂"과 첫 구문의 "說"에 있어서 "說(열)=悅"은 나의 실존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뜻이요, "樂"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로 보아야 한다. 說은 卽自的(즉자적)이요, 樂은 對自的(대자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朋"이란 우리말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朋黨(붕당)"이요, "同門(동문)"이요, "同志(동지)"다. 그것은 개인적 친구가 아니라, 학을 위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遠方(원방)"이란 먼 나라 사람들까지 찾아온다는 뜻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는 國을 벗어난 鄙野(비야)의 세계, 즉 편벽한 庶人(서인)의 세계까지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즉 자로(子路)와 같은 卞(변)의 야인(野人)들도 찾아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공자의 "有敎無類(유교무류)"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을 위하여 배움을 같이 하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것, 공자의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큰 즐거움 이었을 것이다. "人不知而不溫"에서 "人"은 "남"(타인)의 뜻이다. 옛말에 人은 己(자기)와 대비되는 말이다. "不知"는 단순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의 인생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해줄 명군(名君)을 만나기 위하여 주유한 삶이었다. 결국 "人不知"란 뜻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정치적으로 등용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된 素人(소인)으로서 마감한다는 뜻이다. "溫"이란 단순히 "부끄러움"의 뜻이 아니라,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우리말로 "한"에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평생을 통해 나의 이상의 현세적 실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여한이 없다! 왜냐? 바로 君子(군자)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學而第一(학이제일) -2

"有子曰 基爲人也 孝第오 而好凡上者 鮮矣니 不好犯上이오
유자왈 기위인야 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而好作亂者 未之有也니라.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基爲仁之本與인저."
군자 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유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 사람됨이 효제스러우면서도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어본 적이 없다.

군자는 근본을 힘쓴다. 근본이 서면 길이 생겨난다. 효제라고 하는 것은 인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

<해설> - 도올
이것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 有若(유약)의 말이다.

孝는 분명 부모와 자식간의 덕목이다. 그것은 종적이다. 弟는 형제간의 덕목이다. 그것은 횡적이다. 弟는 횡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손함'을 나타내는 일반적 덕성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유가의 생각은 바로 이러한 혈연적 관계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느낌을 모든 인륜의 덕성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는 것이다. 이러한 가까운 인간에 대한 善意(선의)를 확충해 나가는 것이 모든 도리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本立而道生(본립이도생)'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道는 노자가 말하는 우주론적 근본원리로서의 道가 아니라, '인륜의 길'을 지칭하는 것이다.

제일 마지막 구문, '孝弟也者, 基爲仁之本與!'에 관한 宋儒(송유)들의 재미있는 논의를 보면, 문제는 이 부분의 딴 판본에 '孝弟也者, 基仁之本與!'라고 되어 있어 발단되는 것인데, 이러한 타본의 논리에 따르면 孝弟라는 덕목이 곧 仁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즉 효제 그 자체와 인의 뿌리와 가치상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효제'라는 구체적인, 개별적인 덕목에 불가하다. 그렇다면 인의 핵심적 가치가 '효제'의 수준으로 격하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가 程子(정자)에게 묻는다. "효제가 곧 인의 근본이라면, 그것은 곧 효제를 통하여 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정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럴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爲'라는 글자이다. 그것은 실천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이 효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했을 따름이다. 효제는 仁의 한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고 말하면 되어도, 막바로 '인의 근본'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에게 있어서 仁이란 정의불가능한 것이며, 한정불가능한 것이며, 오직 삶의 유동적 현실 속에서만 끊임없이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모스(원 뜻은 가축을 사육하는 장소라는 의미)적 울타리에 갇힐 수 없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仁은 분명히 관계론적인 것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 인적 관계, 물적 관계, 우주론적 관계의 총상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성격이 윤리적인데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공자의 仁은 윤리적인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Feeling-oriented)인 것이요, 감성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심미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도덕적 요구가 아니다.

* 學而第一(학이제일) -3

子曰 巧言令色이 蘚矣仁이니라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말 잘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

<해설> - 도올

공자의 '巧言令色'에 대한 혐오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적인 코멘트로 이해해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공자의 仁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인식론적 틀을 나타내는 중요한 발언이다. '巧言'이란 문자그대로는 '교묘한 발언'이다. '令色'이란 문자그대로 요염한 안색'정도의 의미가 된다. 色은 때때로 '여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기미', '분위기', 발출되는 표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언영색'은 분명 '仁'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鮮矣仁'이란 표현은 본시 '仁鮮矣'를 도치시킨 것으로 '鮮'(드물다)이라는 술어를 강화시킨 것이다. 仁은 교언이나 영색으로는 절대 잡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덕목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낸 것이다. 언어적 표현의 교묘함에 대한 깊은 저주를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노자가 '道可道非常道'라 말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道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면, 仁 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우주론적으로 말한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일상적 삶의 느낌 속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말 잘하는 자치고 인한 자가 드물다!

* 學而第一(학이제일) -4

曾子曰: 吾 日三省吾身, 爲人謨而不忠乎?
증자왈 오 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날마다 세가지로 내 몸을 돌이켜본다.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못하지 않았나?
벗을 사귐에 믿음직스럽지 못하지 않았나? 가르침 받은 것을 익히지 못하지 않았나?

<해설> - 도올

증자는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공자보다 46세 연하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공자의 말년의 제자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 曾晳(증석)이 공자의 제자였음으로 그러한 연줄로 인해 자연스럽게 제자가 되었을 것이지만, 안연이 그의 부친 안로와의 인연으로 공자와 사제의 정을 맺은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증자는 결코 공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공자 자신에 의하여 중요하게 언급된 바가 없다. 공자가 말년에 잠깐 가르쳤던 인물인 것 같다.

'孝經'의 저자로 알려진 증자는 '孝'와 '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증자가 '논어에서 비중있는 인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은 맹자가 子思(자사)-증자계열을 존숭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기 보다는, 전국말기의 유가에서 '충효'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한 음모로 철저히 '증자'의 이미지를 재 구축시켰고, 그렇게 구축된 이미지에 따라 증자설화가 날조되었고, 그 권위를 보장받기 위하여 날조된 설화들이 논어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논어'의 증자관계의 모든 파편은 그러한 후대의 윤색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증자설화의 왜곡 때문에 공자사상이 '忠恕(충서)' 따위로 왜곡되는 비극이 초래된 것이다. 공자의 진실 위에 증자의 이데올로기가 덮어 씌워진 것이다. 이로써 유교는 철저히 정치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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