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고즈녁한 적멸보궁이 있는 금강산 건봉사/강원 고성
설악산 종주 산행기-1.
설악산은 주로 관광여행차 다녀온 곳.
드디어 그곳을 종주할 기회가 왔습니다.
2008년 5월 24일 토요일 아침9시.
초등학교 5학년 막내아들과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바리바리 배낭을 꾸려 짊어지고 집을 나섰
습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강남역으로 가서 작은아버지를 만나 같이 나오는 초등학교3학년과 6학년
조카들과 합류한 뒤 설악산으로 출발.
오늘은 가면서 관광을 하고 고성의 조카들 친할머니가 운영하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잔 뒤 일요일
인 내일 아침 일찍 한계령으로 출발, 거기서부터 종주 산행을 할 예정입니다.
설악산은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으로 그리고 장수대지구, 백담지구, 오색지구, 설악동지구로 구
분하는데 우리의 산행 코스는 남설악 오색지구인 한계령에서 올라가 외설악 설악동지구로 내려
갑니다.
올림픽대로로 가다가 팔당댐을 건너 6번 국도로 양평을 경유하여 계속가다가 곧 이어지는 44번
국도와 46번 국도.
홍천을 지나고 인제와 원통도 지나고 내설악 백담지구를 지나 진부령을 넘어 간성까지 가서 다시
7번 국도로 속초 방향 고성으로 내려오는 여정.
토요일이라 그런지 참으로 차들이 많습니다.
그 차량정체의 짜증나는 지루함을 그나마 차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달래주고 있습
니다.
검단산과 예봉산, 운길산에 둘러 싸인 한강의 아름다움, 저 멀리 수종사도 보이는군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환상.
팔당호 양수리의 몽환적 풍경.
여주에서 양평으로 치달려 내려오던 남한강이 용문산 자락에 막혀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의 이
색적인 아름다움.
그 다음 홍천까지 이어지는 국도변 좌우로 펼쳐지는 산과 계곡의 향연.
가는 길 곳곳에는 신도로 옆으로 구도로가 간간이 갈라지는데 그곳으로 가면 더욱 환상적인 드라
이브 코스가 될 겁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새로 놓인 신도로는 가급적 피하시고 옛길을 더듬어 보시길...
가뭄이 들어 말라버린 소양강 상류와 인제 내린천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지나칩니다.
곧 이어 나타나는 군사도시 원통.
옛날에는 이곳 상인들의 생계가 군인들의 외출, 외박에 달려 있었다는 전설.
지금도 군인들의 천국(?)입니다.
지금처럼 도로가 뻥 뚤려 있지도 않았던 시절.
그곳으로 자대 배치되어 갔던 군인들이 모진 군 생활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제대를 하면서 고향
으로 출발하면서 하던 말.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다시 오겠다는 건지 오지 않겠다는 건지...
설악산 북천 계곡의 맑디 맑은 청정수와는 달리 주변의 풍경은 작년의 참혹했던 수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창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 여름 장마가 닥쳐오기 전까지 무사히 공사를 끝낼 수 있을지...
마침내 진부령을 넘어 소똥령 마을을 지나 우리의 첫 관광지인 건봉사에 도착했습니다.
건봉산 자락에 자리한 건봉사.
네비게이션에 "금강산 건봉사"라고 표기해야 위치가 추적이 됩니다.
금강산 끝자락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설악산 끝자락 같기도 하고...
미시령 자락에 있는 화암사도 마찬가지로 "금강산 화암사"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금강산 건봉사에서 우리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이 고풍스런 소나무와 엄청 많은 토끼풀 그리고
뽕나무에 잔뜩 매달린 오디 열매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토끼풀이라고 해서 토끼가 가장 좋아하는 풀이 토끼풀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르는 토끼에게 줄 풀을 뜯으러 들로 나서면 토끼풀만 잔뜩 뜯어오기도 했습니
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토끼는 토끼풀도 잘 먹지만 씀바귀 같은 풀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
습니다.
토끼풀.
여자애들은 그 꽃을 따서 꽃반지도 만들고, 머리를 따듯 엮어서 목걸이와 팔찌, 화관도 만들었습
니다.
나도 간혹 옆에서 만들기도 했는데 어머니에게 같다 주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얼굴
을 붉히면서 전해 줄 때가 가장 쑥스럽고 가슴 설레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내 아이들은 아빠의 이런 어린시절 추억들을 들려주면 신기해 하더군요.
토끼풀보다는 클로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토끼풀의 사연은 바로 이 이파리에 있습니다.
토끼풀의 이파리는 보통 세개입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나가 싸울 때의 일입니다. 발 밑에 네 잎 클로버가 있어 신기해 허리
를 굽혀 따려는데 총알이 머리 위를 "쌩"하며 날아갔답니다. 네잎클로버가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
해 준 셈이죠. 이 때부터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으로 전해오고 있다는군요.
간혹 네잎클로버를 찾다보면 이파리가 다섯 개인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날 다섯잎클로버는 찾
아내지 못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네잎클로버를 무려 다섯개나 찾아 냈습니다.
오디.
추억의 오들개.
처음에는 녹색이다가 빨간색을 거쳐 검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익습니다. 완전히 익으면 즙이 풍부
해지고 당분이 들어 있어 새콤달콤하고 신선한 향기가 난답니다. 성분으로는 포도당과 과당·시트
르산·사과산·타닌·펙틴을 비롯하여 비타민(A·B1·B2·D)·칼슘·인·철 등이 들어 있다고 하는군요. 강
장제로 알려져 있으며 내장, 특히 간장과 신장의 기능을 좋게 한다고 합니다.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는 예로부터 밭둑이나 산골짜기에 많이 심어 재배했습니다.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고치 속 번데기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어린시절 번데기가 먹고 싶어 집에 있던 귀하디 귀한 라디오를 몰래 집어들고 나가 번데기와 바
꾸어 먹으려고 하다가 번데기 장사의 투철(?)한 신고정신으로 발각되어 어머니에게 엉덩이에 먼
지가 나도록 얻어 맞았던 추억.
지금 우리애들은 번데기를 무척 싫어하더군요.
오디는 날로 먹거나 술 또는 주스를 담그는데 오디술은 예로부터 상심주·선인주라고 하여 귀하게
여겼는데, 빛깔이 곱고 달콤합니다. 약간 덜익은 열매로 담그는 것이 좋다는데 맛과 향을 더하기
위해 매실주나 석류주와 섞어 마시면 좋다고 합니다.
까맣게 익은 오디 열매로 담근 천하일미주 오디술.
정력에 특히 좋다고 하여 요즘에는 남아나질 않습니다.
건봉사 불이문.
독특하게도 기둥이 4개입니다. 1920년에 세워졌으며 해강 김규진 선생이 글씨를 썼다는군요.
건봉사는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찰입니다. 인적이 뜸해 한적한 고찰이지만 여름이면
숲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끝자락을 이룬 곳에 있는 건봉사는 삼팔선이 이 국토
를 나누기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나라 4대사찰의 하나요 31본산의 하나로서 명망을 떨쳤던 곳이
라고 합니다.
그러나 6· 25의 전란으로 절은 폐허가 되었고, 그 유지조차 민통선 안에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
제되었으나, 다행히 1992년 여름부터 이곳의 출입이 가능해져서 지금은 누구나가 옛 성지를 찾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이문을 지나 계곡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능파교를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적멸보궁
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를 모시던 곳.
지금은 사리의 도난 방지를 위해 종무소로 옮겼으며 친견할 수 있습니다.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 연못에서 만난 올챙이떼.
땅콩과 건빵을 잘게 부셔서 주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몹시 굶주려 있었던 듯...
적별보궁 입구 연못에서 만난 다람쥐 한마리.
땅콩을 건네주자 아주 맛있게 돌려가며 씹어 먹더군요.
작은아버지는 배낭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에서도 끝내 땅콩과 건빵은 버리지 않으셨습니
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가까이서 다람쥐를 싫컷 구경할 수 있었답니다.
안개에 휩싸인 적멸보궁.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
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온 뒤 세운 것으로 이로부터 석가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적멸보궁 입구.
적멸보궁 뒤에 있는 진신사리탑. 그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고즈녁한 적멸보궁 앞 뜰.
마냥 바라보고만 싶습니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을까요?
내려오는 길.
적멸보궁 앞 연못속으로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옛 절터.
널직한 공터에는 토끼풀만 무성하고...
과거 건봉사의 번창하고 웅장했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능파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약수.
이곳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능파교라 하
는 이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습니다.
대웅전 앞 약수옆에 서 있는 이 돌기둥에는 십바라밀을 형상화한 상징기호가 5개씩 10개가 새겨
져 있다는데 십바라밀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10단계 수행을 말
한다고 하는군요.
대웅전 입구.
건봉사의 창건은 지금으로부터 14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기 520년 당시 고구려 땅이
었던 이곳에 아도스님이 절을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13년 뒤인 553년에 부속암자인 보림
암과 반야암을 지었다고.
그러나 이 절이 대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758년(경덕왕 17)에 발징화상이 중건하고, 정신·양순 등
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개설한 다음부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효시가 된 이 염불만일
회에는 31인의 승려와 신도 1,820인이 참여하였는데, 신도 중 120인은 의복을, 1,700인은 음식을
담당하여 염불승에게 베풀었다는군요.
예전에는 야트막한 기와담으로 둘러친 건봉사에는 50여기에 달하는 부도와 탑비가 있었다고 합
니다. 원래 건봉사에는 2백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흩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
었고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따로이 부도전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부처님께 절을 하고 대웅전 앞마당을 의기양양(?)하게 걷는 아이들.
그 모습을 뜰 앞 평상에 걸터앉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는 노스님.
노스님의 웃으시는 얼굴 표정이 어찌도 해맑고 인자하시던지...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우고 있답니
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합니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천칸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옛 영화를 추
억하며 외로이 서 있다고...
평상에 계시던 노스님이 자신의 거처로 향합니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종각앞에 솟대 모양
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규모가 꽤 크며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지만 꼭대기
에 오리가 앉아 있어 솟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노스님은 그 뒤편으로 사라지셨습니다.
건봉사의 계곡과 나무에 석양이 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잠자리를 찾아 길을 나서야 할 때.
우리의 서두름을 비웃듯 이 강아지 녀석의 발걸음은 한가롭기만 합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의 얼굴.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던데 절집개 3년에 혹시 도통?
지난 세월의 수많았던 영욕을 말없이 지켜보며 서 있는 불이문.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왁자지껄한 소란속에 많은 관광객들이 내려 석양의 금강산 건봉사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금강산 건봉사를 조용히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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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고즈녁한 적멸보궁이 있는 금강산 건봉사 엄태석님의 산행기를 옮겨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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