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追憶의 章

잃어버린우산의 우순실

추평리 2008. 3. 17. 10:52

13년간 뒷바라지한 장애아들 하늘로 떠나 보낸 우순실 

아들 병수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어요.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나게 했어요
그녀는 결혼을 하면서 조용하게 모습을 감췄다. 아니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독특한 음색으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던 가수 우순실. 그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병수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살다가 저세상으로 떠난 병수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남겨놓았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태어난 병수     

그녀를 만난 곳은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부근에 자리잡은 한 라이브 카페에서였다. 백운호수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잔잔한 백운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겨울의 한적함이 꽁꽁 언 백운호수와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TV
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지만, 매일 오후 4 그곳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키보드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작은 무대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번갈아가며 그녀를 비춘다.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그녀의 독특한 음색을 타고 카페 곳곳에 퍼진다. 오후의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노래 한곡 한곡이 끝날 때마다 손님들은 박수로 화답한다. 라이브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잃어버린 우산의 가수 우순실(45)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날 그녀가 부른 노래는사랑행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노래 가사와 달리 그녀는 힘든 일상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40여 분간의 공연을 끝내고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와 마주 앉았다.
자식이 죽으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산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병수를 가슴속에 묻지 않았어요. 병수가 편안한 여행을 하도록 제 마음속에서도 보내줬어요. 사람에게는 몸과 영혼이 있잖아요. 몸은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영혼은 계속 살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병수는 지금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병수(13)는 지난 1 4일 세상을 떠난 그녀의 첫째 아들이다. 병수는 지난 1991년 두 살 연하의 남편 김헌준(체크체크)씨와 결혼해 태어난 아들이다. 남편은 작곡을 하던 사람으로 그녀가 CM송 녹음을 하던 중 만났다.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반해 만난 지 3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스물아홉 살의 나이였다.
결혼 전까지 노래밖에 몰랐던 그녀는 출산이 임박해서 진통이 시작됐는데도 참고 참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병수는 참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간신히 차에서 탯줄을 잘랐지만, 아이가 숨을 쉬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그 핏덩어리는 엄마 품이 아닌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속으로 들어갔다. “제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없기를하며 기도를 수도 없이 기도했다. 병수는 엄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 속에서 4개월을 보냈고, ‘뇌수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머릿속에 뇌척수액이 정상인보다 많이 고여 있는 병이다. 뇌를 압박해 시간이 가면서 뇌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시력까지 떨어지는 병이었다. 한마디로 병수는장애판정을 받은 것이다. 출산 후 산소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병수의 뇌세포는 일반인의 80~90%가 죽은 상태였다. 소아과에서는 그냥 놔두자고 하고, 신경외과에서는 그것이라도 살려보자고 했다.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요. 처음 받은 수술이 실패헤서 20여 일 후에 또 한 번 수술을 했거든요.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죠.”

 
병원에서도 병수는 12~1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앞으로 받아야 할 고통이 아무리 커도 묵묵히 긍정적으로 다짐하며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수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기에, 보살펴야만 했다.
병수는 평생 3~4개월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살았다. 육체는 조금씩 커갔지만 5~6살짜리 아이들의 체격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소변도 받아야 했고, 먹을 때도 누군가가 떠먹여야만 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 지냈다. 가끔씩 경기를 일으켜 엄마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친가와 외가 모두 병수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녀 역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병수에게만 매달렸다.
병수가 아파서 하루 종일 뒷바라지만 해야 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하고도 가수 활동은 병행했거든요. 하지만 병수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돌보면서 이겨냈죠.”

병수의 장례식에 오지 못한 남편

그녀는 원래 작곡을 전공했다. 학교에서는 클래식 전공자가 대중음악 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가수였다. 학교의 반대를 무릎쓰고 1982년 대학가요제에 나가잃어버린 우산으로 동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추계예술대학 국악과에 진학할 정도로 노래는 그녀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병수는 그런 가수 생활과 맞바꾸면서 돌보던 소중한 아이였다.
둘째 민지(9)를 가졌을 때 가족들은 반대했다. 병수에게 쏟아야 할 정이 나눠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도 장애아로 태어나면 어떳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지는 가족들의 걱정과는 달리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줬다.
민지는 말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오빠를 잘 따랐다. 민지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오빠를 스스럼없이 소개했다. 병수는 뇌의 기능이 정지 상태여서 얼굴은 커도 머리는 갈수록 줄어든 모습이었다. 얼굴은 크고, 머리는 작은 모습이니 일반인들에겐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가수 조동진은 병수의 모습을 보고세모돌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민지 친구들은 그런 병수의 모습이 무서워서 만지지도 못했지만, 민지는우리 오빠 너무 귀엽고 예쁘지라는 말로 친구들을 안심시켜주곤 했다.
민지가 오빠와 함께 놀지 못하니까 외로워 보였어요. 병수가 떠나면 민지가 혼자 된다는 생각 때문에, 셋째 윤수를 임신했죠. 병수와 열두 살 터울이니까 늦둥이죠.(웃음)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윤수를 임신하고 나서 방송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윤수가 행운을 가져다준 거죠.”
그녀는 윤수를 임신한 모습으로 SBS-TV ‘휴먼스토리 여자에 출연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병수를 돌보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알려지자 여러 방송국에서 출연을 요청해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참 고단한 인생이겠지만,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알뜰하게 보살피며 살고 있었다. 2000 KBS-TV ‘영상기록 병원24를 통해 그녀가 장애인 아들을 키우며 사는 모습이 방영됐다. 방송이 나간 후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들로부터당신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 ‘장애인을 둔 부모로서 잘 이겨내고 있어서 감동했다등의 격려를 많이 받았다. 가수가 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윤수가 태어나면서 그녀는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방송에도 가끔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1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시부모 집에서 나와 독립을 했다.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동안 마음속에서 간절히 원했던 노래를 부르면서 힘겨운 삶을 이겨내고 있었다. 공연이 있을 때는 병수를 데리고 다녔다. 남들 손에서는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다른 어려움이 생겼다. 영어 동화 사업을 한 남편의 사업이 갈수록 어려워진 것. 사업 실패로 빚을 많이 진 남편은 재기를 위해 2년 전 중국으로 떠났다. 우순실에게는 가장 아닌 가장 역할까지 지워졌다. 남편의 부재가 가장 슬펐던 때는 다름아닌 병수의 장례식이었다. 남편이 중국에서 들어오지 못한 것이었다.

TV 촬영 때문에 병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이 위안

병수의 병은 더욱 깊어졌다. 폐렴으로 인해 합병증도 생겼다. 기도와 폐기능이 약해지면서 숨 쉬기도 힘들었다. 자다가 숨을 못 쉬어서 응급실을 찾는 횟수도 늘어갔다. 힘겨운 삶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병수가 떠나기 며칠 전, 품에 안겨 있던 병수가 무엇인가를 전하는 듯했다.

말도 못하고 힘들어하는 병수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랬어요. ‘그렇게 힘들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떠날 때는 잠자면서 편안히 갔으면 좋겠다라고 마음 속으로 말해줬죠. 병수는 제 이야기를 듣고 떠난 것 같아요.”
오빠가 죽었다는 사실에 동생 민지는 펑펑 울었다. 아홉 살 된 민지에게도 오빠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슬픔이었다. 하지만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라는 엄마의 말에 울음을 그치고 오빠를 위해 기도를 해줬다. 그렇게 어린 민지는 가족의 아픔을 배려하는 것을 저절로 배운 듯했다. 전화로 소식을 들은 남편은 말없이 울기만 했다. 가족 모두가 울 때도 그녀는 마냥 울고 있을 수 없었다.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한편, 하늘로 떠난 병수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병수는 짧은 삶을 살면서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어요. 제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줬어요. 아픈 병수가 우리들을 많이 성장시켜준 거죠. 병수가 다시 태어나면 세상을 위해서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영상기록 병원24를 촬영하면서 병수를 바다에 데리고 간 것이 그래도 위안이 됐다. 방송이 없었으면 병수는 바다 한 번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났을 테니까. 병수와 함께 산 짧은 시간이 나약하기만 하던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모두 병수 때문이었다. 병수는 그녀에게 사랑과 행복을 알려준 별이었다.

병수를 떠나 보낸 후
   

 

그녀는 요즘 4집 앨범을 준비중이다. 그동안 숨겨온 작곡 실력을 이번 앨범에서 발휘해볼 작정이다. 2000년 재기를 위해 3집 「그 무렵의 아름다운 눈물」을 냈지만 호응은 석연찮았다.
그동안 몇몇 가수에게 곡을 줬어요. 히트가 안 돼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어린이 찬송가를 작곡해 음반을 내기도 했어요. 올해 안에 4집 앨범을 낼 예정인데요, 모두 제 곡으로 만들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슬픈 곡이 많았는데, 이제는 벗어나려구요. 기쁨과 사랑을 전해주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녀가 인터뷰중에 유독 많이 사용한사랑은 이제 그녀를 둘러싼 사회와 인간에게 향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4집 앨범에 그녀의 변한 모습이 담겨질 거란다. 그녀는 비틀스의 ‘Imagine’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단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몽상가가 될지라도 그녀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날 몽상가라고 부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진게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소유물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요. 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까요.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고, 굶주릴 필요도 없고, 인류애가 넘쳐나요.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상해봐요.(‘Imagine’ 가사 중 일부)

/ 최영진 기자  사진 / 전영기

취재 뒷이야기

그녀를 만나 가족사를 듣는 일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힘들었던 가족사를 공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얼음이 언 강가에다병수의 이름을 쓰는 것을 봤다. 가족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 순간이었다.
예상 외로 그녀는 병수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지 않았다. 슬픈 기억을 떠올릴 때도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결혼 생활 13년 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들로 그녀는 단단해져 있었다. 병수 이야기를 할 때는 눈가에 눈물이 번졌지만…. 그런 그녀도 친정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 살면서 어머니와 언니들과 많은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병수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가족의 애틋한 정을 느꼈다고 한다. 부모가 된 후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그녀는 병수를 키우고 떠나 보내면서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담담함 속에 숨겨진 진한 슬픔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왔다.

1.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그대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부터
그데 내겐 단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비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이젠 지난버린 이야기들이
네겐꿈결같지만 햐얀 종이위에

그릴수 있는 작은사람아

라라라~~~~~~~~~~
잊혀져간 그날에 기억은
지금은 빗속으로 걸어가는

네겐 우산이 되리라

반주~
이젠 지나버린 이야기들이
내겐 꿈결같지만

하얀종이위에 그릴수있는
작은 사람이어라
잊혀져간 그날에 기억들은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내겐 우산이 되리라